요즘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게 당연해졌지만, 그 와중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 턴테이블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바늘이 닿는 순간, 작은 잡음과 함께 흐르는 음악 속엔 다른 어떤 매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이 글에서는 나의 첫 턴테이블 구매 경험과 그 과정에서 느낀 소소한 설렘, 그리고 추천하고 싶은 레코드 앨범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나의 첫 턴테이블, 그리고 설렘
처음 턴테이블을 사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왜 굳이?”였다. 스마트폰 하나면 고음질로 수십만 곡을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바로 ‘굳이’였다.
바쁜 일상 속, 음악마저 소비하듯 흘려보내는 게 아쉬웠다. 조금 느리게,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답이 나에겐 레코드판이었다.
구매 전 몇 주간 턴테이블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벨트드라이브냐 다이렉트냐, 바늘 교체는 어떤 게 좋은가, 프리앰프는 내장되어 있나 등등. 단순히 ‘틀면 소리 나는 기계’라고 생각했던 턴테이블에는 은근히 많은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다.
결국 선택한 모델은 오디오테크니카의 입문자에게 적당한 가격에 안정적인 성능을 갖춘 모델이었다. 간단한 조작법, 내장 프리앰프, 자동 재생 기능 등은 초보자인 나에게 딱 맞았다.
박스를 열고, 턴테이블을 조립하는 시간은 마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의식 같았다. 레코드를 올리고, 톤암을 살짝 들어 바늘을 떨어뜨리는 그 첫 동작. 전자음 하나 들리지 않는 공간에, 조용한 잡음이 퍼지고 곧 이어 음악이 흘러나올 때, 예상치 못한 감동이 찾아왔다.
레코드판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
CD나 스트리밍과는 확실히 다르다. LP에는 디지털에서 느낄 수 없는 ‘작은 불편함’들이 있다. 곡을 넘기려면 직접 바늘을 옮겨야 하고, 한 면이 끝나면 다시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이 음악을 ‘듣는 행위’를 더 진지하게 만든다.
무심코 배경음악처럼 흘려보내기보단, 음악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앉아서 한 곡 한 곡 귀 기울이게 된다.
또 하나의 매력은 커버 아트다. 12인치 커다란 표지에 담긴 사진이나 그림, 종종 삽입된 가사 카드와 아티스트의 메시지들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진다.
음반을 꺼내어 손끝으로 닦고, 조심스레 올리는 행위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마음과 닮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다. 객관적 음질로 따지면 고음질 스트리밍에 비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LP 특유의 따뜻하고 풍성한 중저음, 바늘이 닿을 때의 섬세한 떨림은 오히려 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디지털이 지나치게 깔끔하다면, 레코드는 약간의 거칠음이 오히려 위로처럼 들린다.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레코드 앨범들
턴테이블을 들이고 나서 가장 설레는 일 중 하나는 레코드판을 고르는 것이다. 중고 LP 매장을 뒤지거나, 한정판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처음 구매한 앨범은 Billie Eilish – “Happier Than Ever”.
요즘 세대의 대표 아티스트지만, 아날로그 레코드에서 들으니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깊은 울림과 감성적인 곡들이 바늘을 타고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앨범은 The Beatles – “Abbey Road”. 시대를 초월한 명반이자, LP로 들었을 때 그 진가가 빛난다. 빈티지한 음색과 따뜻한 녹음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국내 앨범으로는 정승환 –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추천한다. 감성적인 발라드는 LP의 부드러운 소리와 무척 잘 어울린다. 한 곡 한 곡, 가사에 집중해 들을 수 있어 더 깊게 빠져든다.
입문자라면 너무 오래된 중고 음반보다는 최근 발매된 재발매판부터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 기기 상태나 음질에 대한 불안이 적고, 커버도 깔끔해서 소장가치도 높다.
턴테이블을 들이고 레코드를 듣기 시작한 이후,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엔 배경처럼 흘려보냈다면, 이제는 잠시 시간을 멈추고 음악 한 곡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겼다.
레코드판을 하나씩 모아가는 재미도 크고, 무언가를 ‘천천히 즐긴다’는 감각이 삶의 밀도를 더해준다.
혹시 요즘 음악이 지루하거나, 감정이 무뎌졌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책장 한켠에 턴테이블과 레코드 한 장을 놓아보자.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