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알림을 받고, 수백 개의 메시지를 읽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중 내 마음을 ‘기록’한 것은 얼마나 될까?
손글씨는 그 해답이 되어준다. 빠름의 시대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내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적어내려가는 그 순간.
그 작지만 깊은 습관이 삶의 결을 달라지게 만든다.
오늘은 손글씨로 다시 시작하는 하루: 디지털 시대에 펜을 든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사라진 펜의 존재감, 문득 그리워지다
한때 우리는 모든 걸 손으로 썼다. 학교에서, 일기장 안에서, 친구에게 건네는 쪽지 속에서.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키보드가 주 도구가 된 이후로, 펜을 잡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요즘 마지막으로 손글씨 써 본 적이 언제예요?"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보내며, 손으로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불편함"이라는 말로 묶여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다이어리 한 권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촘촘하게 적힌 글씨들, 삐뚤빼뚤한 문장 사이에 눌러쓴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글씨에도 마음을 담았구나’라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이 작은 발견은 나를 다시 펜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손글씨’라는 오래된 습관을 새로운 취미로 복원해보기로 했다. 이유 없는 그리움이 아니었다. 손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감각이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 손으로 쓰는 시간의 온도
손글씨를 쓰는 행위는 디지털 속도를 거스른다. ‘느림’이라는 단어가 가진 불편함보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이 먼저 다가왔다. 짧게는 하루의 할 일 목록부터, 길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까지. 펜을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갈 때면, 그날 하루를 비로소 온전히 ‘내 것’으로 마무리하는 느낌이었다.
글씨를 쓰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의 정리’였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맴돌던 생각들이, 글자로 꺼내어지며 스스로 정돈되는 경험. 또, 지우개 없는 그 단단한 기록은 내 마음을 더욱 신중하게 만들어줬다. 충동적인 감정은 종이 위에서 한 번 더 걸러지고, 표현은 차분해졌다.
디지털 메모와는 또 다른 만족감도 있었다. 예쁜 펜을 고르고, 종이 질감을 고르며 자신만의 기록 도구를 갖추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가끔은 나만의 레터지를 만들어 편지를 쓰거나,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필사하면서 그 감성을 다시 느껴보기도 했다.
손글씨를 쓰는 시간은 마치 나만의 명상 시간 같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잠시 붙잡아주는 아날로그의 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해주는 소중한 도구였다.
손글씨가 남긴 변화, 그리고 이어지는 기록의 힘
손글씨를 습관으로 삼은 이후, 나의 일상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우선 하루를 더 ‘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꽃 그림 옆에 감정을 적고, 어떤 날은 울적해서 글자에 힘이 빠져 있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그대로 글씨에 녹아들어, 다시 읽을 때마다 그날의 나와 눈을 맞출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손글씨를 나누는 즐거움도 생겼다. 친구에게 직접 쓴 엽서를 보내거나, 감사 인사를 자필 카드로 전했을 때의 반응은 언제나 따뜻했다. “요즘 이런 편지를 받는 건 처음이야.”라는 말과 함께, 작은 손글씨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환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손글씨는 나를 더 솔직하게 해주었다. SNS에서 꾸며낸 나가 아닌, 종이 위에서 마주한 진짜 나. 거기에는 필터도, 이모티콘도 없지만 더 풍부한 감정이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내 글씨체마저, 지금은 너무나 나다운 자산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록의 힘. 나는 이제, 손글씨를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의 방식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화면 속 수천 개의 글자보다도, 직접 쓴 한 문장이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알림을 받고, 수백 개의 메시지를 읽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중 내 마음을 ‘기록’한 것은 얼마나 될까?
손글씨는 그 해답이 되어준다. 빠름의 시대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내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적어내려가는 그 순간.
그 작지만 깊은 습관이 삶의 결을 달라지게 만든다.
혹시 오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면, 지금 펜을 한 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당신만의 글씨로, 당신만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기를.